어렸을 적, 엄마가 사준 위인전집을 즐겨 읽었는데
그중 파브르의 생애에서 인상깊었던건
그의 곤충기가 아니라 한 에피소드였다.
무지 가난해서 밥도 제대로 못먹었던 파브르는
어느날 빵을 사먹을까, 아님 오랫동안 서점에서 눈여겨봤던 시집 한권을 살까.
하는 중대한 고민에 빠진다.
- 파브르의 선택은 시집.
그는 집에 돌아와 맹물 한잔을 조금씩 마시며 시집을 읽는다.
시의 아름다움에 배고픔도 잊었다는, 참말로 '위인'스런 에피소드.
그때 난 파브르의 모습에 퍽 감동받았었다.
지금 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책을 살 용기는 없지만
문득 오늘 아침, 시집을 읽으면서 파브르가 떠올랐다.
왜냐면 굶주린 배를 잡으며 시를 읽기 때문;;;
따끈한 밥 먹고 싶다 흙.
오늘부터 흠뻑 빠질 글은 문인수의 시집 '배꼽'이다.
그는 좀 독특한 이력의 시인이다.
고졸학력, 불혹이 넘은 나이에 시인이 되어
그의 시가 세상에 알려진지는 얼마 안되었지만
각종 상을 수상하면서 시단을 이끌고 있는 시인 중 한명이다.
참고로 이 책은 KBS <TV 책을 말하다>에 소개되면서
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.
일반 서점엔 재고가 없어서 구입하기 어려운 관계로 온라인 주문.
오늘 아침에 출근하니 띵동, 하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.
날씨만큼 좋은 유쾌한 선물이다.
그의 시집 첫 장에 실린 시를 소개.
꼭지
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.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.
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
여생을 핥는지, 참 애터지게 느리게
골목길 걸어올라간다. 골목길 꼬불 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,
걷다가 또 쉬는데
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꽃 한 송이
노랗다. 바닥에, 기억의 끝이
노랗다.
젖배 곯아 노랗다.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.
주전자 꼭다리 떨어져나가듯 저, 어느 한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.
황량한 대지에 오롯이 솟은 새순 하나.
눈물겹도록 반가운 문인수의 시다.
아.... 점심 먹지말고 시를 읽을까.
풉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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